선조들의 모빌리티, 말

포니 쿠페의 부활을 바라보며

포니 쿠페

도산대로는 우리나라에서 신기한 차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최근 도산대로 사거리에 현대 모터 스튜디오가 ‘포니와의 시간’ 이라는 전시를 오픈하면서,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꼭 가야 하는 장소로 우뚝 섰다.
온갖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포니쿠페 이야기 때문에 식상함을 느끼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실물을 보면, 언론에서 왜 저렇게밖에 못 다루었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대를 뛰어넘는다. 백문이 불여일견.

포니쿠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모카 김한용님의 영상을 참조하세요.

포니쿠페 로고. ©트라이브 에디터

포니쿠페 로고. ©트라이브 에디터

포니 쿠페의 모든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 이었지만, 에디터는 B필러에 위치한 포니쿠페 로고에 눈이 갔다.
아니 조랑말을 이렇게 멋있게 그릴 일인가? 몸통과 머리의 비율을 보면 분명 조랑말이 맞긴 한데, 한껏 세운 갈기와 역동적인 발동작, 그리고 풍성한 꼬리로 인해 작은 체구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멋짐을 표현하였다.

말 馬

말은 자동차의 역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동 수단이기에, 그리고 멋지기에,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말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슈퍼카 브랜드인 페라리의 흑마, 포르쉐 방패 로고 정중앙의 까만 종마, 국내 최고의 프리미엄 자동차 구독서비스인 트라이브의 당나귀(…). 그리고 70년대의 현대 포니와 미국에서 머슬카의 소형 버전을 일컫는 포니카 라는 세그먼트도 그렇다. 포니카의 대표주자인 포드 머스탱도 북미 서남부 지역의 야생마의 종 이름에서 딴 것이다.
자동차 회사의 로고들.

자동차 회사의 로고들.

그런데, 단순히 로고에 말을 사용했다 라는 관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각각이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다.
포르쉐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도시의 문양에서 말을 가지고 왔다. 이 도시는 서기 950년, 전투마를 키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니, 진정한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다고 봐도 된다.
1286년 만들어진 슈투트가르트의 첫 문양.

1286년 만들어진 슈투트가르트의 첫 문양.

페라리는, 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군의 에이스 파일럿 프란체스코 바라카 Francesco Baracca 의 전투기 문양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제 겨우 100년이 넘은 이야기이기에 포르쉐에 비하면 신생아 수준.
프란체스코 바라카와 그의 전투기. (연도 미상)

프란체스코 바라카와 그의 전투기. (연도 미상)

머스탱은 미국의 서남부의 야생마이다. 미 대륙에 처음 말이 들어 온 것이 1493년 콜럼버스와 함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스페인사람들과 멕시코사람들에 의해 말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었고, 17세기부터 인디언 원주민들이 일상생활에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야생에서의 머스탱들.

야생에서의 머스탱들.

안타깝게도 21세기 현재, 우리 주변에서 말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경마장이나 승마장에 다니지 않는 이상, 페라리나 포르쉐를 구경하는 것 보다 최소 100배는 어려울 것이다. 에디터가 마지막으로 말을 직접 본 것은 2021년 할로윈때이다.
마치 영국의 1930년식 클래식 벤틀리를 도로에서 접한 것과 비슷한 전율과 감동이 있었다.
2021년 할로윈 데이 최고의 화제였던 백마탄 공주님. <br>©z_o._ni 인스타그램

2021년 할로윈 데이 최고의 화제였던 백마탄 공주님.
©z_o._ni 인스타그램

Western

말을 다루는 문화 컨텐츠 중, 우리가 가장 익숙한 것 중 하나는 단연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극으로 불리우는 웨스턴 영화 일 것이다.
사실 웨스턴 영화는 영화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토마스 에디슨 (그 에디슨 맞다) 이 1983년 뉴저지에 만든 블랙 마리아 스튜디오 (세계 최초의 영화 제작 스튜디오) 에서, 16초에서 90초 분량의 단편 무성영화 7편을 상영한 것(1894년)을 웨스턴 영화의 시초라고 본다. 이들은 스토리가 없이 배우들의 동작들을 기록한, 요즘 식으로 말하면 쇼츠에 가까웠다.
초기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에디슨 필름에서 배급한 1903년의 대 열차 강도 The Great Train Robbery 이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제작된 첫 ‘스토리를 가진’ 웨스턴 영화였다.
The Great Train Robbery 의 리플렛 커버와 <br>신문 지면 광고.

The Great Train Robbery 의 리플렛 커버와
신문 지면 광고.

The Great Train Robbery 영화.

웨스턴 장르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제작되고 소비되고 있는 장르이다. IMDB (Internet Media Data Base) 사이트에서 Western 을 검색하면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을 포함해 무려 38,831편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Fredric Remington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웨스턴 무비. 하지만 ‘웨스턴 아메리칸 아트’ 라는 장르는 매우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보통 미국의 미술을 이야기 할 때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잭슨 폴록, 앤디 워홀등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웨스턴 아트들은 조악한 퀄리티로 미술사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웨스턴 아트 자체가 미술계에서 높게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떠한 분야든 잘 하는 사람은 있는 법. 프레드릭 레밍턴 Fredric Remington 은 뛰어난 작품 퀄리티와 디테일, 재미있는 스토리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웨스턴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The Flight, 1895.

The Flight, 1895.

레밍턴 이라는 이름이 익숙한 독자들도 있을 법 한데, 그는 1816 창립된 미국 최초의 총기회사, 레밍턴 암즈의 창립자인 엘리팔렛 레밍턴 Eliphalet Remington 와 사촌지간이었다.
그는 미국의 첫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과 먼 친척이기도 했고, 아버지는 남북전쟁에서 북부 연합군 Union 의 육군 대령으로 참전했다. 한마디로 초 금수저.
예일대에서 순수미술을 3학기 공부했고, 풋볼팀 선수로도 뛰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결핵으로 돌아가신 후 18000달러를 상속받은 그는, 새로운 기회와 재미를 찾아 서부의 몬타나로 떠났다. 이 때 나이가 19살이었다.
소 목장도 알아보고 광산도 인수하려고 했지만 둘 다 자금 부족으로 포기했고, 나중에 켄자스로 가서는 유산을 다 쏟아부어 양 목장과 양모 거래에도 손을 댔었다. 살롱도 공동 운영하다가 포기했다. 한마디로, 그가 손 댔던 일들은 그림을 제외하고는 모두 망했다.
A Cold Morning on the Range, 1904.

A Cold Morning on the Range, 1904.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세기 후반 빠르게 변화하는 미국 서부의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깊숙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카우보이, 인디언 원주민, 미국 기병대, 그리고 그들의 라이딩 스타일과 다양한 종류의 말에 대해서도 높은 이해도를 가질 수 있었다.
자기가 죽으면, 비석에 “He knew the horse.” 라고 새겨달라고 친구에게 얘기 한 일화도 유명하다.
현재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서부의 모습은 아주 빠르게 변할 것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고, 방황을 거듭하던 자신의 진로를 확고하게 결정했다. Vanishing West 를 예술로 기록하기로.
뉴욕 기반의 주간지 Harper's Weekly 의 커버.

뉴욕 기반의 주간지 Harper's Weekly 의 커버.

지금과 다르게 정보가 부족했고, 내륙에서의 여행조차 쉽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그는 웨스턴 전문가 (인플루언서..) 로 인정받게 해 주었다. 결국 커리어 통산 200개의 아티클, 2편의 소설을 썼고, 3000개의 미술 작품을 남겼다.
1889년 작품인 <A Dash for the Timber> 는 퓰리쳐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역사학자 데이비드 맥컬러 David McCullough 에게 미국 역사상 최고의 미술작품 중 하나라고 극찬을 받았다.
A Dash for the Timber, 1889.

A Dash for the Timber, 1889.

가로로 2미터가 넘는 이 그림에서는 8명의 카우보이가 다수의 아파치 인디언들에게 쫓기고 있는데, 한 명은 총에 맞아서 다른 동료가 옆에서 부축해 주며 말을 달리고 있다. 역동적인 말들의 움직임과 표정, 흙먼지, 바람에 접힌 카우보이 모자 챙 등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다.
The Old Dragoons of 1850,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움에서 1907년부터 소장중이다. <br>©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Old Dragoons of 1850,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움에서 1907년부터 소장중이다.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Mark Maggiori

프레드릭 레밍턴이 웨스턴 페인팅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는 마크 맛지오리 Mark Maggiori 이다.
Under The Eye Of Yuttahih. ©Mark Maggiori

Under The Eye Of Yuttahih. ©Mark Maggiori

그의 그림들은 마치 텍사스 시골 목장주의 집에 하나씩 걸려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식 이발소 그림.
밥 로스가 '아주 쉽죠' 하면서 그린듯한 전형적인 자연 배경에 카우보이나 인디언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놀랍게도 서부 개척시대의 배경이 되었던 몇 몇 주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Living With The Mountains. ©Mark Maggiori

Living With The Mountains. ©Mark Maggiori

놀랍게도 2023년 3월에 열린, 오로지 그의 작품만을 위한 경매에서는 낙찰가가 한화로 최소 약 1억원, 최대 약 6억 6천만원까지 형성되며 완판되었다.
경매 전 공개하는 예상 낙찰가의 2배~3배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50만달러에 낙찰된 In The Middle Runs A River. ©Mark Maggiori

50만달러에 낙찰된 In The Middle Runs A River. ©Mark Maggiori

헤리티지

프레드릭 레밍턴과 마크 맛지오리의 그림을 보면, 같은 대상을 그림에도 불구하고 극명한 차이가 느껴진다. 프레드릭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수들은 역동적이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고, 말은 삶의 수단이다. 그 시대의 역동성을 역사책 처럼 기록 한 것이다.
하지만 마크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수들은 여유있다. 유유자적하게 아름다운 자연 환경속을 거닐고 있다. 기법만 보면 훨씬 더 사실적인 페인팅인데, 비현실적이다. 19세기 후반 그 어떤 카우보이가 자연을 만끽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이처럼 우리가 현시대에 소비하는 말의 이미지는 '럭셔리'의 영역에 가깝다. 헤리티지를 담은, 시각적이고 감성적인 만족감을 주는 피사체이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클래식카와 비슷한 역할이다.
현대자동차의 포니 쿠페도 50년의 헤리티지를 담고 있는 자동차이다. 하지만 그저 1회성 이벤트로 그칠지 실제로 양산이 될 지는 미정이라고 한다. 마크의 그림처럼 관상용이 될지, 아니면 프레드릭의 그림처럼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테이스트는,

자동차와 관련한 문화 전반에 대한 정보를 트라이브 이용자와 함께 공유하기 위해 기획, 제작되었습니다.
글 : 트라이브 에디터
      ( yunsik@thetrive.com )
표지 사진 : 포니 쿠페 컨셉트